♬ 하늘어머니 동행하시는 하나님의교회
2013년 2월 21일 목요일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성경의 비밀 엘로힘 하나님 "어머니하나님 안상홍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 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어머니하나님은 모든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만분지 일이나마 헤아려 볼수 있습니다. 성경가운데 예언되어 있는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주시마 약속하신 생명수를 받으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
우리가 대부분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만 계신 것으로 앎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것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 하심을 알려주고자 이렇게 적어놓은 것입니다. 구약에만 등장할리 없겠죠?^^ 신약에는 바로 어머니 하나님이 계심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성경에는 마지막때 성령과 신부로 등장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그 내용을 성경구절과 함께 보시길 바랍니다.
계 22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위의 말씀을 살펴보시면 성령(아버지하나님)과 신부(아내 어머니하나님)가 말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신부가 정말 어머니를 의미 하는 말씀인지 계속 짝된 성경말씀(사 34장 16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은 예루살렘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더라(계 21:2) 하면서 계시를 통하여 보아서 확실히 보지 못하였지만은 그 계시 속에서 천사는 똑똑히 말하였습니다. 네게 어린양의 신부를 보여주겠다구요
계 21장 9절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위의 말씀을 보시면 분명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요한에게 보인다고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하늘 나라를 사도 요한만 계시를 통해 본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은 세째 하늘까지 직접 가서 보고서 위의 있는 예루살렘을 어머니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고후 12:1 "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럼 사도 바울이 보고온 위의 있는 예루살렘은 무엇이라고 기록을 하였을까요?
그럼 사도 바울이 보고온 위의 있는 예루살렘은 무엇이라고 기록을 하였을까요?
갈라디아서 4장 26절 말씀을 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 4 :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네 사도 바울은 보고 적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늘 어머니가 계심을 성경은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15일 금요일
사도바울의 당부 "머리수건" 안상홍님 가르침대로 하는 하나님의교회* 하늘어머니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와티비)
안상홍님& 하늘어머니 하나님의교회^^
[ 머리수건 ]
사도 바울의 당부
고린도전서는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이 편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하늘어머니 안상홍님 믿는 하나님의교회* 준비된 애드리브 (멜기세덱출판사)
안상홍 하나님 하늘 어머니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교회(와티비 www.watv.org)
준비된 애드리브
엘로히스트에게 띄우는 편지
‘애드리브’란 라틴어 ‘Ad Libitum(자유롭게, 임의로)’의 약자로,연극이나 방송에서 대본에 없는 즉흥 연기를 하거나,
음악에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고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애드리브가 알고 보면 철저한 준비 아래 나온다는 사실 아시나요?
우리가 대화할 때 쓰는 문장에는 100% 새로운 것이 없고,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썼던 대화 중 현재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조합해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흥 연주도 과거에 자신이 연주했던 방식 중 몇 가지를 골라 적절하게 조합하여 연주하는 것이라는군요.
순간적으로 나오는 애드리브 역시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나 봅니다.
음악에서 연주자가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고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애드리브가 알고 보면 철저한 준비 아래 나온다는 사실 아시나요?
우리가 대화할 때 쓰는 문장에는 100% 새로운 것이 없고,과거 비슷한 상황에서 썼던 대화 중 현재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조합해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흥 연주도 과거에 자신이 연주했던 방식 중 몇 가지를 골라 적절하게 조합하여 연주하는 것이라는군요.
순간적으로 나오는 애드리브 역시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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